일본의 도박

파칭코의 왕국 일본에는 '파치프로'라고 하여 파칭코만 직업적으로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 전 국민들이 열광하는 도박 중의 하나인데, 이 파칭코 업계는 재일교포가 실세를 쥐고 있으며, 공업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만화와 게임을 접목시킨 파칭코들이 등장하고 있고, 계속 개발중이며, 신제품이 계속 출시된다고 합니다. 파칭코의 세계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파칭코는 슬롯머신 게임을 일컫는 일본식 이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슬롯머신을 표준 명칭으로 쓰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파칭코'가 각종 매체에서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슬롯머신 게임이 일본의 경로를 통해 파급된 당연한 결과이지만, 어쨌든 일본인은 슬롯머신 게임에 파칭코라는 그들만의 고유 명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파칭코에 열광적입니다. 실제로 일본인 중 파칭코를 즐기는 사람은 무려 3천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업소는 1만 6천여곳에 이르며 종업원 수만 해도 30만명이 넘고,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실제로 어마어마한 수치일겁니다. 게다가 1개점에 1,000~2,000대의 파칭코 기계를 둔 곳도 있어 그 매장의 규모를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파칭코 산업의 연간 매출액은 약 30조엔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또 파칭코 기계는 기종도 매우 다양하여 이를 분석해 확률을 높이려는 연구진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며, 한 권에 400엔에서 500엔 하는 월간 파칭코 전문 잡지의 발행부수도 200만부를 넘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편의점이나 서점에는 종류도 다양한 파칭코 전문 잡지가 곳곳에 진열이 되어 있고, 잡지는 이왕 즐기는거 따면서 즐기자는 식의 슬로건 아래 파칭코 신제품 연구 및 공략법 소개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인들이 파칭코에 열광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박 게임이 거의 그렇듯 게임에서 이길 경우의 배당이 매우 후하다는 점도 그 한 몫을 차지하고 있죠. 이런 이유로 경마나 경륜, 모터보트 등 이른바 도박성있는 사업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파칭코의 매니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은 이들이 파칭코 가게에서 만나 결혼하기도 하고 직업 자체를 파칭코로 바꿔버리는 재밌는 현상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파칭코는 일본에만 발달하고 있는 오락입니다. 외국인들으 ㄴ파칭코와 같이 조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거나 소음이 심한 게임을 좋아하지 않죠. 그리고 아시아 각국은 파칭코를 도박으로 규정하여 수입금지를 하고 있는 국가가 많습니다.(근래 대만에서 수입허가가 되었으나 그다지 흥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듯이 파칭코가 일본에서만 발달이 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도박이라는데 있습니다. 본래 자신이 획득한 구슬의 개수에 비례해서 상품이나 담배 등 현물로 바꾸어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 중에 이 현물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파칭코 가게 옆에는 항상 소극장 티켓판매소와 같은 작은 부스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현물을 현금으로 바꾸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 파칭코 그 자체는 도박이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로 봤을 때 '도박'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을 일본 경찰도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단속을 하지 않는게 아니라, 알면서도 파칭코 자체가 워낙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 즐겨하고 있으며, 거래되는 액수 또한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못 보는 척 하는 것이죠. 하지만 파칭코의 도박성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 없이 감시합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매춘방지법은 있어도 매춘 행위를 묵인하고 있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칭코는 원래 1910년 경 프랑스의 릴시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놀이기구입니다.

이것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20년에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시에서 '카일 형제 상회'가 '핀볼 게임기'라는 이름으로 등록 했던 것이 그 시초가 되었죠. 영국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 되었는데, 영국에서는 이 게임을 '코린트'라는 상회가 발매하여 '코린트 게임기'라는 이름으로 등록 됬습니다.

이 '코린트 게임기'가 일본에 수입되어 개조 및 개량된 것이 오늘날의 파칭코 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파칭코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오게 된 말일까요?

파칭코라는 이름은 게임을 할 때 생기는 마찰음에서 나온 의성어라 할 수 있습니다.

쇠구슬이 구멍으로 들어가거나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일본인들에게는 마치 '파치파치' 혹은 '파칭파칭' 하는 소리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 구슬이 '코로코로'돌면서 떨어지는 것 같아 '파칭코로코로' 혹은 '파칭코로'라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파칭코'로 귀착되어 오늘날의 '파칭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칭코라는 오락이 시작된 곳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공업도시라는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파칭코가 공업지대에서 먼저 시작된 것은 그곳에서 기계부품으로 제조된 볼 베어링이 파칭코 놀이의 행심인 쇠구슬 대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시카고,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회사가 있는 공업도시였으며, 1930년 일본의 파칭코가 나고야시에서 시작되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1930년에 나고야에는 500여 개의 파칭코 기계 제조업체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볼 베어링 때문입니다. 5.5G , 직경 11MM 크기의 은색 구슬, 구슬은 당시 일본 정밀 공업의 상징이었습니다.(일본의 베어링 제조기술은 미국의 우주 로켓에도 쓰일 정도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베어링 기술은 일본의 파칭코 사업이 확장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파칭코가 처음 시작되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사실 파칭코 기계의 제작이 어려웠습니다. 목재, 못 등이 군수품 목록에 들어가 사용이 제한되었기 때문인데요, 1940년 7월 6일에는 '사치품 제조 판매 제한 규칙'이, 1941년 8월 30일에는 '금속류 특별 회수령'이 각각 내려져 파칭코 기계를 제조하는 일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파칭코는 기계에 못을 박아 구슬이 튕기도록 장치하는데, 당시에는 기존에 있던 핸들과 못까지 빼가는 실정이었죠. 때문에 초창기의 파칭코 기계는 그 형태가 오늘날의 기계와는 달랐으며, 그것이 못 중심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한편, 초창기의 파칭코는 과자 가게 등에서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손님들이 가지고 놀던 기계입니다. 당시에도 파칭코는 직사각형의 눈 높이 기계와 마주 앉아 쇠구슬을 구멍에 넣어 점수를 얻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던 그 당시의 배당 상품은 고작해야 껌이나, 치약, 그리고 초콜릿 등이었습니다.

파칭코는 기계와 벌이는 쇠구슬 따먹기 게임입니다. 현금이나 선불로 구입한 카드를 기계에 넣어 쇠구슬을 삽니다. 핸들을 조작해 쏘아 보낸 쇠구슬이 스타터에 들어가면 고아타리가 돼 5개의 쇠구슬을 뱉는 동시에 3열로 배열된 15종의 숫자나 무늬 판이 움직여 추첨에 들어갑니다. 표준형 기종은 쇠구슬이 10 ~ 15개에 하나 꼴로 스타터에 들어갑니다. 추첨 도중 두개의 숫자무늬가 일치하면 당첨이 기대되는 리치에 이르고 나머지 하나가 일치하면 오아타리가 됩니다. 이론상 리치와 오아타리의 확률은 각각 15분의1, 225분의1입니다. 오아타리가 되면 어태커가 열리고 여기에 구슬이 들어갈 때마다 15개의 구슬이 나옵니다. 어태커는 구슬이 10개 들어가면 닫히고 16회 개폐를 반복하기 때문에 약 2,400개의 구슬을 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어태커의 개폐를 15회로 줄인 기종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딴 쇠구슬을 경품과 바꿉니다. 쇠구슬을 살 때는 전국 어디서나 500엔에 125개, 즉 4엔씩이지만 팔 때는 2.5엔에서 등가교환인 4엔까지 다양합니다. 과자나 담배, 음료수에서부터 전자제품과 고급 브랜드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품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또 1,000엔, 2,500엔 어치 금줄이나 금화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딱지도 갖춰져 있습니다. 이 플라스틱 딱지를 파칭코점 근처의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바꿉니다. 경품의 90%가 현금이고 교환소를 파칭코점이 운영합니다. 파칭코점에서 현금을 내주지만 않으면 도박금지라는 형식 논리는 충족된다는 편법적 발상이죠.

파칭코와 재일교포는인연이 매우 깊습니다. 파칭코는 그 후 계속 개량과 발전을 하여 일본의 명물이 되었고 서민들의 사업이 되었는데, 재일교포들이 여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초기의 파칭코 사업은 소자본, 소규모의 일종의 벤처 사업이었습니다. 일본의 산업이 재편되던 1970년대, 큰 자본을 굴리는 일본인들이 제조업, 서비스 업종에 몰려들 때 일본인들이 단순한 오락거리로 생각하고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한 파칭코 사업에 소자본으로 마땅한 사업거기를 고르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재일교포들이 뛰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인조차 깨닫지 못한 일본인적 유흥심리와 도박심리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통쾌한 사업적 안목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파칭코는대부분이 개인이나 기업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경영주의 70%이상이 한국계나 조총련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칭코가 들어서는 곳은 대개가 역 앞거리, 상점거리, 비즈니스 타운, 공장지대, 학생거리, 관광지, 교외 같은 목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파칭코가 성업을 이뤄나가자 경찰의 영업허가, 단속권이 강화되었습니다. 비교적 재일교포 유력업자가 많이 나온 이 유기업은 또 하나의 차별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1971년 2월 '개정 풍속 영업 법안 요강 시안' 이란 것을 공포합니다. 이 법은 '사행 유기장법'과 '풍속 관계 영업법'으로 되어 있었는데 소위 파칭코업을 단속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말하자면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이간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이 커져 법은 성립되지 못합니다. 1984년 3월에도 재시도는 있었습니다. 이 쯤부터 파칭코업은 더 이상 단순한 영세업이 아니었죠. 그로부터 이용객은 18세 이상의 학생, 회사원,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련층이 다양해졌습니다.

현재 파칭코 업계는 한국 및 조총련계 동포가 70%, 나머지 30%를 일본인 그리고 중국 화교가 점하고 있습니다. 파칭코로 억만장자가 된 평화공업사의 정동필, 일본명 나카지마 켄키치씨는 1941년 일본에 건너가 막노동 생활을 하며 파칭코로 부를 얻습니다. 그리고 한창우씨는 1995년 7월 7일 도쿄 시부야 역전의 번화가에 초대형 파칭코점 '쓰리 세븐'을 세웠습니다. 그는 무려 파칭코 기계 1천대 이상 설치했고 8층 건물의 2층에서 6층까지를 모두 파칭코점으로 채웠습니다. 공사비만도 50억엔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럭키 세븐을 '쓰리 세븐'으로 세배나 확대한 셈입니다. 이들 모두가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파칭코 사업으로 부권을 거머쥔 재일교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파칭코의 시스템에 있어 특이한 점은 파칭코 가게 내에서 일절 현금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과거 야쿠자가 개입되었던 폭력단 문제로 인하여 법적으로 현금 거래를 금지시켰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1회 아타리(당첨)로 나오는 구슬은 약 2,500알 정도로 약 6,000엔입니다. 만약 재수가 좋아 같은 그림이나 숫자가 나란히 걸리는 아타리가 됐을 경우는 10박스가 나오기도 하는데, 10박스면 6만엔입니다. 아타리가 되면 구슬의 개수를 세는 기계에 구슬을 부어 개수가 표시되어 있는 종이나 카드를 뽑아 들고 카운터로 갑니다. 그리고 가게 안에서는 카운터에 그 종이나 카드를 주고 현금이 아닌 경품표와 교환(또는 생활용품이나 경품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교환한 경품표를 가지고 각 파칭코점에서 100~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지정 현금 교환소에 가야 구슬 수에 해당하는 만큼 현금으로 바꿔 가질 수 있습니다. 파칭코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그 시스템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변해가고 있는데, 그러한 시대 상황은 지금과 같은 이른바 '도박장'내에서 일절 현금이 돌지 않는 아이러니 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가운데 단연 으뜸은 파칭코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경기 침체로 매상이 다소 줄었다곤는 하지만 그래도 일본인들이 해바다 이곳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환상여행의 대가로 뿌리는 돈은 자그마치 30조엔, 우리나라 한해 예산이 일본 돈으로 10조엔 정도이니 우리 예산의 3배가 그것도 현찰로 파칭코에 뿌려지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파칭코는 패가망신하는 목숨 건 게임은 아닌듯 보여집니다. 그저 우리돈 2~3만원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 신나게 즐기고 스트레스를 풀고 또 재수가 좋으면 잭팟도 터뜨리는, 그런 오락 정도로 그치는 듯합니다. 물론 일본도 파칭코에 빠져 가산 탕진하고 폐인이 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는 스트레스 해소라는 선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여가를 즐길만한 놀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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